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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와우촌감】 코로나 이후 행복한 자기찾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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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 칼럼 |
길고 길었던 코로나 전염병도 백신 접종률과 더불어 이제는 끝자락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친구나 사람들과 사회적 접촉도 거의 하지 못하고 여행이나 대외활동도 하지 못했던 집콕, 방콕의 우울한 경험은 많은 사람들에게 낮은 자존감을 안겨주고 있다. 갑자기 대면 수업으로 학교에 복귀한 학생들은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도 두렵고, 익숙하지 못한 인간관계는 자신을 더욱 위축되게 만들기도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낮아진 자존감으로 우울과 불안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자존감이 내 주변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까? TV의 교양 프로그램이나 방송은 자존감을 강조하며 높은 자존감만 가지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가 마치 다 해결될 수 있는 것인 양 주장한다. 힘든 인간관계, 개인적 불행, 낮은 학습 성과 등 개인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불행과 실패에서 자존감은 만병통치약처럼 쉽게 해결책으로 거론된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바우마이스터(R. Baumeister)와 리어리(M. Leary)는 다소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이들은 장기간의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자존감의 효과는 사실상 대중들이 생각과 다르게 기대 이하라고 이야기한다. 실제로 자존감을 높임으로써 비행 청소년을 선도하거나 저소득층의 자활을 돕고자 ‘우리 모두가 승자’라는 식의 노력을 했지만, 성과는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았다. 그간 자존감의 효용성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가 얼마나 가치 있고 특별한 존재인지를 일깨우는 것만으로도 긍정적 태도가 형성되고 실제로 성공에도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왔지만,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지는 못한 것이다. 조금 위로가 되는 것은 비록 높은 자존감이 훌륭한 성과나 성공적인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은 아니지만, 자존감이 낮다고 하더라도 잠깐 침울해질 수는 있지만 어떤 심각한 문제나 위험이 초래되는 것도 아니라고 한다.
주변의 잘 나가는 친구나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왜 그들처럼 될 수 없는지에 대해 괴로워한 적이 있다면 그건 자신의 자존감이 낮아서의 문제가 아니라, 높은 자존감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는 또 다른 강박관념 때문일 수 있다. 높은 자존감이 우리가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되며, 그 목표 때문에 또 하나의 좌절이 일어난다. 이제는 자신을 믿는 자에게 기적이 일어난다는 논리에서 잠시 벗어나 보자. 자신에게 환상의 최면을 걸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이해하고 바라보는 연습을 하자. 자존감의 본질은 자신에 대해 내리는 나 자신의 평가 체계이다. 자신을 항상 평가받는 대상으로 만드는 것은 매일 매일 시험을 보아야 하는 처지와 다르지 않다. 행복을 약속하는 자존감이 실제로는 행복을 방해하는 또 하나의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실제로 자존감을 강조하는 사람들 중에는 타인의 눈에는 이미 성공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정해놓은 합격점에 미진하다고 판단하고 자기 스스로 자신을 가혹하게 대하는 경우도 흔하다.
행복해지는 길은 자신에 대한 가혹한 평가나 채찍보다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때로는 자신에게 무한한 애정을 보내는 열렬한 팬이 되고 누구보다도 자신을 믿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되자.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에고이스트가 되자. 전 세계의 오직 한 명, 자기 자신만이라도 자신을 끝없이 믿어주는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주자. 자존감이라는 의무를 들이대기보다는 내 인생의 시작에서 끝까지 한 번도 쉬지 않고 곁에 있을 가장 소중한 친구인 자기자신에게 따듯한 위로가 되어주자.
멋지지 않아도 괜찮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고 사랑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오롯이 자기 자신에 대해 보다 너그럽게 대하고 소중하게 대해주자. 나 자신을 아끼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자존감 높은 사람이 될 것이다. 자존감은 만들어지는 허상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비춰 보여지는 세계이다.
이원준<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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