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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설】 종강을 앞두고 連理枝(연리지)를 바라보는 단상
카테고리 칼럼

臨溪濯我足   시냇가에 임해서 나의 발을 씻고
看山淸我目   산을 바라보며 나의 눈을 맑히네
不夢閑榮辱   한가히 영욕 꿈꾸지 않을 것이니
此外更何求   이 밖에 다시 무엇을 구하겠는가? 


 고려 때 혜심선사는 遊山(유산)이라는 시에서 “看山淸我目(간산청아목) 산을 바라보며 나의 눈을 맑힌다”고 하였다. 오월 산은 바라보기만 해도 눈이 씻어지고 오월의 연초록 나뭇잎은 어디에 서 있어도 우리의 눈을 맑혀 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산을 잠시 바라보며 고요를 깊이 호흡하자니 눈앞에 연리지라고 이름해 주고 싶은 소나무 한 그루가 보인다. 연리지의 고사를 살펴보자면, 후한(後漢)때 채옹(蔡邕)이라는 사람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성품이 독실하고 효성이 지극했는데, 어머니가 병으로 앓아누운 3년 동안 계절이 바뀌어도 옷 한번 벗지 않았으며, 70일 동안이나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집 옆에 초막을 짓고 기거하며 모든 행동을 예에 맞게 했다. 그 후 채옹의 집 앞에 두 그루의 나무가 자랐나며 점점 가지가 서로 붙어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이에 《후한서(後漢書) 〈채옹전(蔡邕傳)〉》에 나오는 ‘연리(連理)’는 처음에는 지극한 효심을 뜻하는 말이었다. 훗날 이 말이 지극한 사랑을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된 것은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가 당현종(唐玄宗)과 양귀비(楊貴妃)의 사랑을 〈장한가(長恨歌)〉에서 在天願作比翼鳥(재천원작비익조: 하늘에서는 비익조가 되기를 원하고) 在地願爲連理枝(제지원위연리지: 땅에 있어서는 연리지가 되기를 원합니다.)라고 노래한 시에서 볼 수 있다.

 비익조는 날개가 한쪽뿐이어서 똑같은 반쪽을 만나야만 두 눈이 돼 볼 수도 있고 두 날개가 돼 날 수도 있다는 전설 속의 새이고, 연리지는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것으로 지극한 효심 또는 지극한 사랑에 비유되는 전설 속의 새와 나무이다.

 어찌 보면 지극함은 모두 비익조 연리지의 관계성을 이루게 하는 일인 것 같다. 학문에 있어서도 스승과 제자의 학연은 가히 비익조 연리지이어야 할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스승이라 해도 가르쳐 줄 제자를 얻지 못하면 무엇 할 것이며, 아무리 영특한 제자라 해도 배움을 받을 스승을 만나지 못한다면 또한 볼 수도 날 수도 없을 것이다.
 종강이 되기 전에 당나라 곽탁타(郭槖駝)에게서 나무 심는 방법을 배워 오월 산에 연리지 한그루 심어두고자 한다. 남들에게 곱사등이라고 놀림을 받던 나무 심는 사람 곽탁타는 이렇게 말했다. “나무를 심을 때는 어린 자식을 다루 듯하고, 심고 난 뒤 놓아 둘 때에는 버려 둔 듯이 하면 그 천성이 온전해져 그 본성이 저절로 자라나게 됩니다” 

 개강이 될 때는 항상 어린 자식을 키우는 마음으로 나무를 심고자 하는데 벌써 종강이 오월 산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지극한 사랑을 뜻하는 연리지가 서 있는 산을 바라보며 나의 눈을 가만 맑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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