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대신문

칼럼

  • 청대신문
  • 칼럼
칼럼 상세보기, 제목, 카테고리, 내용, 파일등의 정보를 제공합니다.
제목 【와우촌감】 봄이 오고, 사월이 오고, 또다시 오월이 오면
카테고리 칼럼
 
 이따금 와우촌감의 귀한 지면에 글을 쓸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신문이든 방송이든 이전부터 이른바 ‘말의 길(言路)’을 독점해왔던 자들의 포악이 아직도 횡행하는 이 시대에 작은 지면에서나마 책임 있는 글을 쓰기는 어렵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남들이 우러러볼 만큼 멋지게 살아오지도 못한 나는 삶의 고매한 교훈이나 준엄한 담론 따윈 말할 수 없고, 그저 내가 가진 작은 생각의 한 부분을 털어낼 뿐이다. 그러한 생각의 조각은 김훈작가의 표현을 빌자면,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사람들에게는 종종 기울어진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조차 멈추고 싶진 않다. 

 다시 봄이다. 한동안 포근하다가 화사해진 옷차림이 무색하게 매운 날씨가 돌아오기를 되풀이하더니, 이젠 누가 뭐래도 진짜 봄이 왔구나 싶다. 경상대 뒷길 언덕에 매화가 만개하고, 살랑살랑 부드러운 바람에 꽃향기를 전해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나 그러한 아름다움만큼이나 아픔도 많은 시간이 우리 역사속의 봄날이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때, 매년 봄 사월에는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 시민혁명을 기리는 행사가 교내에서 열렸다. 윤동주시비 앞의 행사에는 많은 학생들이 모였고, 기념식 후에는 수유리의 4.19 기념묘역으로 함께 갔다.  독재정권의 앞잡이들이 마구잡이로 총질을 해댔던 그날 목숨을 잃은 젊거나 어린 이들이 진달래 꽃 더미 아래 누워있는 그곳으로. 우리가 매순간 그들을 잊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봄이 오고 사월이 되면 어김없이 기억을 떠올리곤 했다.

 자유와 정의와 민주주의를 원하는 시민들에게 서슴없이 총부리를 들이댄 자들은 1980년, 다시 광주에서도 있었고, 지금까지 한번도  미안하다 하지 않았던 그들 패거리는 여전히 힘이 세다.  아니 자기들이 힘이 센 줄 알고 있다. 악으로 선을 짓밟고, 거짓으로 참을 덮으며 역사조차 자기들 말로 왜곡하던 그들은 우리가 다 잊어버리길 바라겠지만, 그렇게는 못하겠다.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역사 속에 부끄럼 없는 너희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그리고 진실을 원하는 사람들이 끝내 이겨낸다는 것을!

 오늘 이곳의 그들과 다르지 않은 자들이 미얀마에 나타났고, 민중을 두려워하지도 존중하지도 않은 잔혹함의 재현이 한없이 안타깝지만, 그 또한 우리는 기억할 것이며, 역사 속에 숨김없이 기록할 것이다. 

 어김없이 사월이 왔고, 아직 해결하지 못한 슬픈 기억이 돌아온다. 벌써 칠년이 흘렀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세월호의 기억은 생생하고 가슴이 아리다. 봄이어도 한없이 차가운 사월의 바다에서 스러진 아이들을 모욕하던 자들은 오월의 광주를 짓뭉갰던 자들과 닿아 있으며, 오래전 사월 거리의 시민들에게 총을 난사했던 그들과 다르지 않다. 여전히 진실은 온전히 떠오르지 않았지만,그랬다고 해서 영원히 침몰하진 않을 것이다. 해마다 봄이 오고, 사월이 오고, 또다시 오월이 오면 우리는 기억하고 또 기억할 것이며, 진실을 찾을 때까지 기억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모든 거짓이 낱낱이 드러나고, 우리가 잃어버린 사람들을 슬픔도 아픔도 없이 기억할 그날이 올 때까지. 그런 봄날이 올 때까지! (사족: 쓰고 보니 마지막 한 줄이 BTS의 노랫말과 같아졌다.)

윤정옥<문헌정보학전공>교수
 


파일

담당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