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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독자투고】 철학 구몬, 하지 않겠는가
카테고리 여론
어릴 적, 대부분 구몬이나 눈높이 같은 학습지 하나 정도는 구독해서 풀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매일 학습지를 풀며 자기 주도 학습을 하는 것이 양육자들의 목적이었을 텐데 실상은 다르다. 나는 학습지를 미루다 학교에서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을 가리지 않고 풀거나,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고등학생이 돼서야 학습지를 그만둘 수 있었던 나한테 학습지는 달가운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진해서 구몬 같은 정기 구독 학습서를 신청했다.

‘전기가오리’는 해산물이 아니라, 서양 철학을 함께 공부하고, 관련 문헌을 번역·출판하며, 출판물에 대한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는 학문 공동체이자 출판사의 이름이다. 한 달에 만 원이면, 두 달에 한 번씩 알찬 철학 학습지 꾸러미를 받을 수 있다. 학습지 꾸러미에는 번역한 철학 논문들과 그 논문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용설명서, 해설서 등이 들어 있다. 구독자들은 전기가오리를 흔히 ‘철학 구몬’이라고 부른다. 다만 일반 학습지와의 차이점은 매주 검사하는 선생님과 부모님이 없다는 것이다. 학습지를 받아서 자유롭게 읽기만 하면 된다. 전기가오리에서는 철학 공부 모임을 운영하며, 철학과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 주기도 한다. 또한 운영자가 직접 전국 구석구석 ‘설명 배달’이란 것을 한다. 설명 배달이란 전기가오리의 운영자가 후원자를 찾아가 설명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정기 구독을 하지 않아도, 홈페이지에서 판매 중인 책을 따로 사서 읽을 수 있다. 지난 전기가오리 부록은 ‘어느 대학원생 x의 석사과정’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유머가 들어간 1인용 보드게임이었다. 나는 이 게임을 쓸쓸하고 외롭게 혼자 플레이했다. 원래 그런 용도다.

아는 지인이 내게 전기가오리를 소개해주자 나는 홈페이지에 들어가 고민할 시간도 없이 정기 구독했다. 후원자가 많아서 신청하면 한 달 정도 기다려야 하지만, 현관문 앞에 놓여있는 학습지 꾸러미는 나를 참 설레게 한다. 두 달에 한 번 있는 이벤트나 다름없다.

한승희<동양어문학전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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