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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산책길】 n+1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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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헛소리를 기억하는가. 스스로 본인에게 거창한 캐릭성을 부여하며 악마의 삶을 살았다고 고백한 이는 성범죄자 조주빈(박사)이다. 그는 2019년도부터 2020년까지 25명의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협박해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했다. 이어서 검거된 텔레그램 성 착취의 시초인 ‘n번방’ 운영자 문형욱(갓갓) 등 가해자들은 온라인에서 가명을 악용해 피해자 인권을 끔찍하게 짓밟았다.

 2020년 당시 이들이 검거되고 n번방을 파헤친 ‘불꽃’의 ‘불’ 활동가(前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는 “좋은 방향으로 어쨌든 변화하고 있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변화는 없는 거 같다”고 말했다. 이에 방증하듯 수년이 흐른 지금, 디지털 성 착취는 더 악랄해졌다. 더욱 교묘해진 수법으로 피해자에게 접근해 성 착취물을 강제로 찍게 만들고 해외에 서버를 둔 SNS에 유포했다. 이번 ‘엘(L)’ 사건은 ‘제2의 n번방’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지난 n번방 사건 이후 ‘두 번째로 발생한’ 디지털 성 착취 사건의 인식을 준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지난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은 피해자는 총 6,952명으로, 2018년보다 5,500명이 증가했다. 특히 10대 여성 피해자 수는 전체의 17.2%인 1,194명으로 가장 많았다. ‘엘(L)’ 사건은 단순히 두 번째로 발생한 디지털 성 착취 범죄가 아니다. 수많은 n번방 사건 중 하나다. 

 조주빈, 문형욱이 각각 징역 42년형, 34년형이 선고되고,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이 만들어졌는데도 피해는 왜 끊이지 않는가. 이는 고작 몇 명의 가해자가 잡힌다고 끝나는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는 “니즈(수요)가 없었다면 조주빈이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수많은 공범이 공급자와 수요자로 둔갑한 n번방은 건재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믿기지 않지만, n번방 가해자들은 ‘업무 스트레스’, ‘장래가 창창한 청년’, ‘표창받은 경찰 간부’ 등 다양한 이유로 감형됐다. 심지어 집행유예를 받기도 했다. 사법부는 가해자의 서사에만 과하게 이입해 제2차 피해 양산을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은가. 가해자 때문에 창창했던 장래가 무너진 피해자의 권리부터 제대로 보장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미온적인 처벌 때문에 사건이 공론화된 이후로도 여성들은 안심할 수 없었다. ‘제2의 n번방’을 넘어 보복심이 더해진 ‘제 수백만의 n번방’ 사건으로 이어질까 두렵고 개탄스럽다. 
 
<이아연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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